요즘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 지 몰라도, 새드엔딩을 내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문학을 낭만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현실과의 관계가 무뎌지기 쉽상이고,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뻔한 스토리 전개가 살아남는 것 같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현실이 어쨌든지간에, 자기가 원하는 결말이 살아남기를 원한다. 주인공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랑은 이뤄졌으면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비처럼 쏟아지는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게 되고, 기적같은 사랑 이야기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상적이다. 이성적으로는 완벽한데, 우리내의 현실이 그렇지 못한다. 욕이 울컥 쏟아져 나온다. 되던 일도 안되고, 마킹을 밀려써서 0점 처리를 받기도 하고, 1분 지각으로 인해 시험을 못보기도 하고, 짝사랑 하던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떠나보내는 일도 발생한다. 진짜 발생한다. 믿기지가 않는데. 이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아무리 우연 속에 있는 게 우리 인생이지만, 너무 개연성이 없다.
이 영화는 이런 패러다임을 깼다. 개연성과 필연성의 애매한 줄타기에 성공했다. 간단하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연애하다가 헤어지는 이야기다. 연애를 했으면 결혼으로 가는게 우리의 바램이라면, 거기서 사뿐히 고꾸러진다. 남자 주인공’한센’은 여자 주인공 ‘썸머’와 헤어지고 ‘어텀’(autumn = 가을, 여자가 바뀌었음을 시사한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우발적인 행동이 필연적인 만남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공고한 운명으로 선언된다. 문장으로 표현하면 상당히 간결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신의 행동이 우선시 되는 사람이라면, 운명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선택에서 기인한 행동이기에, 그 행동이 미리 예견되어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더 나은 사람 혹은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리는 방향에 매달리지 않는다. 내가 지금 만난 이 사람을 알아가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어딘가에서 만나던지 간에 운명처럼 느껴진다. 마법같다. 서로의 태어남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존재함에 기뻐한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너의 의견은 이상이다.’ 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장난치시는건가. 이성적으로 완벽하다는 건데. 마치 그래서 현실과의 괴리감이 있어서 뜬구름 잡는 다는 식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말의 뜻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기대를 해야한다. 이렇게 해줘야 하고, 이건 이게 맞는 거여서 이렇게 해주고. 영화에서는 이를 화면을 2분할 해서 보여준다. 기대했던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 기대 했던 모습은 진행이 빨리 되다가, 어느 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합쳐진다. 어바웃 타임에서 그랬듯이, 인생을 즐겨야 하는 것이 된다.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반드시와 어쩌다의 차이는 횟수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1번 일어났다면,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자꾸만 필연과 우연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우주의 먼지 같은 우리가 그런 존재다. 그래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저 흘러가는 순간의 집합체가 된다. 자꾸만 물길을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필연의 우연성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말을 설명해냈다. 이 영화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고, 또 사랑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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