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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문학 단편선

문학 단편선 - 멈춤

  다리를 자꾸만 떨었다. 복이 달아난다고, 그만하라고 해도 그는 그렇지 않으면 도망가고 싶다며 다리를 자꾸만 떨었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면 얼굴이 붉어지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말을 더듬다가, 어영부영 발표를 마치곤 했다. 발표 내용은 늘 과함과 조잡함 사이에서 적정한 수준을 잡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현아 조금만 더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다고 자신감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왜 자꾸만 벌벌 떨다가 시험에 떨어지고 마는 것일까. 모의고사는 곧 잘 풀어대던 애가, 수능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결과를 본 다른 이들의 눈에는 기대는 했지만 결국 그저 그런 애가 되었다.

‘그 정도네.’

  그렇게 선생님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배신자가 되었다. 졸업식 때, 어떤 선생님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고 했다. 교무실에 찾아가더라도 선생님들의 눈은 컴퓨터에 머물렀고, 매우 바쁜 채를 했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운이 7할이고, 할 수 있다는 기운이 나머지를 차지하는데. 생각해보면 현은 운도 없었고, 그 때문인지 기운도 없었다. 그런 현의 모습은 아버지가 도망가면서 부터였다. 어머니한테 차마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머니마저 도망가신다면, 자기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궁금했더라도 참아야 했다. 참다 참다 응어리져서 가슴 한 편이 찌르르하게 아파와도, 억울한 감정들이 울컥 차올라도 참아야만 했다. 그의 생존본능이었다.
  이런 그를 북앤무비소셜클럽이라는 동아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사실 정식 동아리도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학내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카페에서 만나 그 달의 책, 영화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그냥 일종의 작은 모임이었다. 현의 눈망울이 카페 조명을 받아 흔들렸다. 현은 이 모임 속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곳에는 돈도, 배신이라는 단어도 글자 속에 존재했다. ‘누군가의 삶이 이럴 것이다.’를 묘사한 책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분이 현이 겪은 현실의 고통을 일깨워줬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집단은, 타인이 살아가는 삶을 카메라에 담아서, 돈을 벌었다. 연마다 시상식도 하곤 했다. 타인의 삶을 필름 속에 담아가도, 그 삶은 계속 플레이 된다. 필름에서는 감독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현실은 항상 유리막 속에 갇혀 있는 답답함만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타인의 삶은 적당한 방식으로 비치는 것이었다. 내 삶은 저러지 않으니깐 괜찮다. 불쌍하지만, 내 삶은 아니다. 
  그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였다. 그렇지만 현도 그 나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했다. 항상 파이팅 넘치게 행동했고, 별 것 아닌 일에도 웃으려 했다. 그럼에도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부족한 대학 타이틀과, 불안한 표정은 회사 면접 평가에서 퇴짜맞기 일쑤였다. 한 번은 면접 준비학원에 들어가 표정관리 수업도 들었지만 여전히 눈동자는 흔들렸고, 다리는 떨고 있었다. 물론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운이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게 들었다. 서류는 붙어서 오는데 언제나 최종에서 가볍게 떨어진다.
  언젠가 한 번 내가 현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현은 500일의 썸머가 제일 좋으면서 싫다고 말했다. 사랑이 새드엔딩으로 끝났던 점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난 그 부분이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더 좋아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어텀'이 등장했잖아."
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잖아. 겨울은 끝이지. 결국 썸머가 지나가듯 어텀이 떨어져 나가고, 윈터의 추위에 아사하고 말겠지. 그게 '현실적인' 영화를 해석하는 안목이지."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너무 디스토피아적인 결론 아니야?"
현이 다리를 떨며 말했다."잘 생각해봐.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있고, 불합격하는 사람이 있는데, 불합격한 사람들은 이유가 정말 많아. 마킹 실수도 하고, 늦잠자서 시험을 못 치고, 공부를 안하고, 등등. 물론 자기 책임도 있겠지. 근데 붙은 사람들은 전부 운이 좋았대. 마킹 실수한 사람은, 무슨 운이야? 왜 그 사람한테만 그런 치욕을 주는 건데. 왜 하필 그 사람인데. 그래서 결국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수록 고통에 빠져들게 돼. 뜬구름을 보며 좋아하는 게 우리가 잡을 수 없어서 그런 것처럼. "
  나는 가만히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다리를 떨면 운이 없어진데. 나쁜 버릇이 계속되면 좋은 운명이 실현되지 않는데.”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차갑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현이 살며시 웃으며 다리를 멈췄다. 지금도 그를 만날 때마다 그는 가끔씩 떤다. 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쌓아가듯, 현의 불합격도 쌓아갔다. 그래도 면접학원을 다니면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자각하는 순간에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다가 멈춘다. 그렇게 자신의 온전치 못한 느낌을 잡아낸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아버지를 잊은 것도, 만들어 내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며, 문학을 읽어가며 원래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이었다. 낳아 놓은 자식쯤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튀는 것도, 그냥 그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멈추지 않으면 자꾸만 생각이 터져 나왔다. 다른 가정에는 부모라는 존재를 2명으로 채운 채 시작하는데, 왜 그에게는 한 명뿐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속에서 힘들어 했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이렇게 빗대어 벌을 주는 걸까. 그러면 기억이라도 남겨주지. 뭘 잘못했더라면, 적어도 억울하지는 않았을 텐데. 태어나고 보니 이 모양이면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래도 현은 깜깜한 감정을 최대한 밝게 비추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의 이번 년도 마지막 공채 지원서에는 밝은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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