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좋게 잘린 고기들이 불판 위에 놓여 있다. 고기들을 휘적이며 완전히 익었는지, 자세히 봤다. 돼지고기는 잘 익혀먹어야 했다. 기생충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소고기는 적당히 익혀 먹어야 했다. 미디엄 정도. 너무 익으면 질기고, 또 너무 날 것으로 먹으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식감이 영 이상했다. 날 것의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아니었다. 상추에 싸서 한번, 깻잎에 싸서 한번 그리고 쌈장에 고기만 찍어서 한번 먹었다. 오묘하다. 정말 깻잎 한 장 차이인데, 풍미가 다르다. 포만감이 다르다. 쌈을 싸서 먹으면 입안 가득 베어 먹을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더 먹고 싶어 진다는 생각에 눈이 메뉴판으로 간다. 160g에... 16,000원이다. 맛있게 먹었기에 후회는 없지만, 더 먹기에는 카드값이 걱정이 된다.
5만 원 이상은 서명해주셔야 돼요. 네 감사합니다. 잘 먹었어요. 수고하세요.
이른 점심의 허기를 채웠다. 택시를 잡아 신촌으로 갔다. 거기에서 회사 미팅이 있었다. 젊음을 느끼고 오라며 항상 주간 회의를 대학가 근처에서 하도록 제안한 ceo의 열린 마음 덕분에 이렇게 신촌에 왔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좋은 건가 싶다.
신촌에 오면 항상 미네르바에서 만났다. 미네르바는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직접 보여준다. 보고 듣고 느껴서 마시는 과정까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커피 가는 소리, 원두 냄새, 그리고 커피가 씻겨지는 모습까지 전부 관찰할 수 있었다. 그게 좋았다. 남들 다하는 가페인데, 남들처럼 커피를 대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주인장의 세심한 마음이 보였고, 그게 이곳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우리 회사의 주인장도 이런 곳을 찾아다니기를 원했다. 회사에만 있어봐야 뭐 하겠냐며, 근무 시간에도 밖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주도했다. 이런 CEO를 만나게 된 건 이전 직장에서 였다. 그때는 클라이언트로 만났다. 그는 모든 콘셉트와 텍스트를 주고 말 그대로 내가 완성해달라는 옵션을 그었다. 그리고 그를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이상에 대해 물었다. '작가 이상이요? '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당신의 생각일 거예요.'
나는 내가 뭔가 잘못된 점이 있었나 싶어 반문했다. '콘셉트도 주셨고, 우리는 이제 세부 디테일만 생각해보면 될 텐데요. 갑자기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
ceo는 물을 한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나는 당신의 작품을 시립 미술관에서 본 적 있어요. 항상 직접 오셔서 설명을 하더군요. 가끔 전문 해설 봉사자로 알려주시더라고요. 아무도 당신이 작가인지 모르더군요. 그렇게라도 다가가고 싶었거든요. 고기를 잘 익히려면, 육회를 먹어야 해요. 그래야 알 수 있거든요. 어떤 게 잘 익은 고기인지. 그걸 알려면 경험해봐야 돼요. 고기를 굽는 위치도, 먹는 위치도.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당신이에요.'
그렇게 나를 꼬셨고, 그렇게 회사가 매력적인 사람들로 채워졌다. 가끔은 우리의 이러 주간회의에 찾아오기도 하고, 커피 한 턱 쏘고, 아이디어 한 두 개씩 던지고 자기는 바쁘다며 사라졌다. 그렇게 다른 팀들 돌아다니며, 망해도 그럴 수 있다며, 일감을 더 가져왔다. 대외협력팀을 닦달했지, 우리에게는 항상 그대들의 능력만 발휘하라며 우리를 감싸줬다. 우리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랐다.
한아가 미리 와서 테이블 위에 커피 씻은 물이 내려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찍 왔네. 저는 일이 일찍 끝났더든요. 나머지 분들도 곧 오실 거예요. 신기하지 아직. 이게 대학생 때 하고 또 다른 것 같아요. 회의를 여기서 할 줄이야. 노트북을 켜며 한아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런 곳 계속 찾아볼까? 한아가 잠깐 와서 미리 쓴 메모를 나에게 건넸다. 좋은 걸요. 근데 이렇게 이른 오후에 안 하면, 불가능할 것 같아요. 또 사장님 아이디 어니깐, 잘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아의 이름은 부모님이 순 우리말인 '한아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문예창작과를 나와서 각종 전시회 스토리 라인 짜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담당한 부분은 항상 친절했다. 극단적 심플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텍스트로 벽을 채우는 일이 빈번했다. 보통은 그런 모습이 신선하다며 전시회 담당자들이 항상 한 부분을 골라갔다. 구어체에 가까운 텍스트가 기존과 다르다며 관람객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날을 세운채로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녀처럼 친절한 텍스트를 구성해주지는 않았다.
내가 주문한 에티오피아 원두를 씻은 물이 완전히 다 내려갈 때, 성원이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에 급하게 클라이언트 미팅이 와서, 오늘 회의를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방금 잡혔거든요. 저희도 지금 돌아가고 있어요. 아마 한아랑 들어오셔야할 것 같아요. 어디서 전화가 왔는데. 그 외주인데, 캐나다 한국인 미술전이요. 텍스트 갈아엎으라고 항의 전화 들어왔데요. 아니 안 건드리겠다며. 몰라요. 돈 다시 달라는데 설득해봐야죠. 왜 나한테 바로 전화를 안 해. 담당자가 난데. 명함도 드렸거든요. 근데도 회사로 전화를 하셔 가지고. 알겠어. 나도 갈게, 소리 지르고 난리 치면 그냥 이번 건 던져. 그래도 한아랑 열심히 했는데.. 됐어.
커피를 테이크 아웃 컵에 담아, 한아와 함께 택시를 잡아탔다. 한아가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 캐나다 한국인 미술전. 제 텍스트로 구성했던 거 맞죠? 회사에 찾아왔데요? 그런가봐. 그때 한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바꿔드릴까요? 한아가 나에게 말했다. 그거 맡기신 분이에요. 담당자 바꿔달라고 하셔 가지고. 한아의 전화를 받아 들었다. 그 늙은 노인네는 너네가 뭔데 '한'을 그런 식으로 장난치듯 풀어냈냐며 역정을 냈다. 너희들에게는 우리의 경험이 장난처럼 느껴지냐고. 우리는 생과 사를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렇게 텍스트를 풀면 그걸 본 외국인들이 뭐라고 보겠냐며 문책했다. 당신이 책임자이니 대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도대체 저희한테 왜 맡기신 거에요. 그냥 너네가 쓰면 될 텐데. 장난치시는 것도 아니고. 이거 쓰느라 한 사람이 모든 일 뒤로 밀고 우선으로 다 했어요. 하도 마감시간을 당기고 닦달을 하셔 가지고. 물론 마음에 안 드실 수 있어요. 근데 이딴 식으로 말하고, 약속도 안 잡고 회사로 찾아오신다고 하는 건. 씨발 우리가 무슨 따까리도 아니고.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신맛이 강하게 났다. 분명 커피는 써야 하는데. 향이 시고, 처음 느낌이 시다. 상당히 독특하다.
일단 회사 오셔서 만나자고 말씀드렸다. 한아가 옆에서 그런 가만히 나를 지켜봤다. 전화가 끝나고 자기 핸드폰을 받아 들더니 가만히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아의 이야기가 그렇게 잘못되었던 걸까. 그렇게 상스럽고 불쾌했을까. 삶이 고통 속에 있다고, 남들에게 그 고통이 자랑인 듯 광고해야 되는가. 고통을 견디는 방법이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것만 있는 것일까. 유난히 길이 막혔다. 택시 미터기가 차분히 멈춤 없이 올라갔다. 미터기는 고장도 안 난다. 빨리 올라갈 때도 있건만. 회사 건물이 보였다. 그렇게 큰 건물은 아니었지만, 사원들이 적어도 집에 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모기처럼 사람을 피 빨려고 하지는 않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직하는 사람도 아쉬워했을 정도로, 구성원들에게는 이런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회사였다. 로비에는 그 노인네가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을 데리고 성원이가 준비해둔 회의실로 들어갔다. 대외협력팀도 함께 자리해 있었다. 한아는 사무실에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부득불 회의실에 들어왔다.
이런 일이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지만, 처음에 우리에게 전권을 믿고 맡긴다는 말을 남기고 간 사람이 발등을 찍는 경우는 견디기 힘들었다. 노인네는 절대로 우리 작업물을 못 받아들이겠다며 거부했다. 텍스트 자체가 엉망이라고, 이건 고쳐서 될게 아니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우리가 정말 똥을 준 것이라면, 내가 우리 사람이라고 감 싸도느라 우리가 쇠퇴하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대외협력팀에서 선례들을 살피며 계약금만 일부 받는 선에서 깔끔하게 계약을 끝냈다. 그렇게 그 노인네는 돌아갔다. 이윽고 CEO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우리가 무슨 야구선수도 아니고. 우리의 작업물이 자로 잰 듯 딱딱 평가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ceo가 말했다. 물론 못 하지. 그러면 저들은 우리를 뭘로 평가해. 저들이 돈을 주는데. 우리는 그 돈을 받으면서 살아가는데. 그래도 걱정하지 마. 저런 사람들은 버려도 돼. 앞으로도 안 해줄 거야.
'Be 문학 단편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 단편선 - 멈춤 (0) | 2019.04.21 |
---|---|
문학 단편선 - 그림자 (0) | 2019.04.18 |
문학 단편선 - 작업실 (0) | 2019.03.23 |
Be 문학 단편선 -space 마무리 (0) | 2019.03.20 |
문학 단편선 - 수족관 (0) | 2019.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