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달동네를 한번쯤은 그려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연습실로 쓰기에 정말 괜찮은 곳이었다. 계란 판 방음재를 두르고, 작은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했다. 그리고 드럼을 들여와 하루 종일 두드렸다. 그러다 힘이 빠지면 침대에 누워 가만히 음악을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편안했다. 남들은 죽지 못해 산다는데, 이런 곳에서 살다보니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저 멀리 주상복합이 보이고, 큰 빌딩들이 숲처럼 공간을 이루고 있지만, 딱히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자그마한 연습실을 가지는 게 꿈이었을 때, 남들은 쉽게 조언해줬다.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인생 한번 사는데. 물론 그 사람들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많은 변수들이 다가왔다. 어디로 할 지, 방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전월세로 하는 게 좋은지.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이 2~3개월을 보내다가 이 달동네를 산책 겸 오게 되었고, 그 날 덜컥 계약서를 작성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아무 계약서에나 덜컥 사인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봐도 엎어지는 게 사람 인생이라고 항상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유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는 친하게 지내시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어머니는 친구에게 강원도 펜션사업에 투자기회를 제안 받았다. 의심없이 투자를 하셨지만, 친구가 돈을 들고 합법적으로 날랐다. 어머니께서 직접 말해주시지는 않았지만, 집에 오는 사람들과, 오고 가는 고성 속에서 자연히 깨달았다. 저 새끼들이구나. 우리 엄마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놈들이. 한번 봤던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펜션을 지어 놓고는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벤츠를 타고 다녔다. 펜션은 나름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로서는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어머니께서도 그저 친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친구인데, 내 돈을 들고 튈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모은 돈인 줄 뻔히 알면서. 우리 내 삶이 뭐 그리 평탄하다고 우리 집 돈을 가져갔던 걸까. 어머니의 절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무슨 놈의 사기가 합법적일 수 있냐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어머니를 나무랐다. 그렇게 어머니는 한참을 아무 말없이 집에 계셨다. 그리고 주식과 같은 돈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언제나 말리셨다. 그거 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그래도 나는 운 좋게 빛 좋은 개살구를 피해갔다. 서울 치고는 비교적 가격이 낮았다. 딱 그 가격의 값어치를 약간 하회했다. 그래서 시설이 좋지 않았지만, 살면서 눈에 띄는 불편한 점은 없었다. 겨울을 나는 게 추웠지만 나름의 묘미가 있었다. 전기장판을 틀고, 온 창문에 문풍지를 붙이고, 공기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애를 썼다. 처음에는 개의치 않게 여겼다가 입이 돌아갈 뻔도 했다. 보일러는 동파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물을 조금씩 틀어놔도, 추위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동네 에서는 돼지고기 집에서나 볼 수 있던 연탄이 집집마다 쌓여 있었다. 겨울만 되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봉사활동을 하러 사람들이 오고, 얼굴에 연탄을 묻힌 채 사진을 찍고, 그러고는 갔다. 그렇게 쌓아도 주상복합처럼 높은 건물은 없었다. 그냥 끝내주게 못 사는 동네였다. 대기업 유통망과 편의점이 점거한 주상복합과는 달리, 담배 마크를 달고 있는 작은 슈퍼 하나가 전부였다. 대부분이 복지센터에 가 끼니를 해결하기에, 특유의 음식문화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사실 음식문화가 존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래전에 사라졌고, 복원되지 못한 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문화는 이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대를 거치며 전승되는데, 뚝 끊겼다. 남은 것은 라면박스 같은 기초 생활 수급자들을 위한 물품이었다.
이 동네는 빛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상복합을 보며 서울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떠드는데, 그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남아있다. 간간히 음악 학원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돈을 벌었다. 직장인 취미반도 한번 시도했었다. 직장인과 학생들은 말은 통하지만, 듣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학생들은 변화하는데,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한다. 어떤 중년 남성은 처음에 한번, 마지막에 한번 나오더니, 자신의 실력이 늘지 않았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원장님께서 보통은 이런 시비에 너그럽게 넘어갔다. 두 번 나온 비용만 받았다. 그 남자가 안 나오면서 터진 수업시간들을 보상받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원장님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갔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은 양반이었다. 중년 여성이 80%의 출석률을 채우더니, 이사를 가게 됐다며 전액 환불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을 의심했다. 아무래도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원장님이 벌레 보듯 그 사람을 바라봤다. 중년 여성이 뭐가 그리 당당한지 소리를 지르는 통에,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계약을 보장할 수 있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적당히 합의를 보라고 했다. 학원비 입금내역과 cctv모습 밖에 없기에, 원장은 받은 돈의 50%를 돌려줬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손님은 왕이고, 주인장은 호구라고 누가 말해준 걸까. 그걸 왜 믿을까.
그러면서 학원에서는 멀어졌다. 가끔은 세션 작업도 하고, 공연 반주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괜찮은 수입원이었다. 인스타 팔로워도 적당히 있는 터라, 필요할 때 인스타그램으로 간간히 나를 불러주곤 했다. 그 사이 스케치북 하나를 사서 스케치 작업을 시작했다. 가능한 24시간으로 구분된 하루,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들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 동네 모습을 끊임없이 바라봤다. 평상에 하루 종일 앉아있는 노인들. 그들의 무념 무상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힘이 빠졌다. 병원의 환자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면, 이곳은 그보다 더한 무기력이 있었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존재했다. 마치 끌려와서 삶을 시작했다는 듯. 간간히 젊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진 한번 찍고,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이 동네를 떠나갔다. 그렇게 이 풍경만 사진기에 담아 놓고 갔다.
해는 비추는데 동네가 빛이 나지 않는다. 빛을 삼키고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가로등에서는 아직도 주황색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간간히 백색 led등이 설치되고 있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어느 날 밤은 하늘 색깔이 검붉은 팥죽색이었다가, 어떤 날은 푸르스름한 색을 띄었다. 번화가는 불빛 속에서 환하게 빛나느라 이런 모습을 보여줄 여력이 없었던 것 같은데. 색깔이 참 다양했다. 그런 모습들을 스케치에 색깔로 채워 넣었고, 그림이 만들어졌다. 잘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속속 보이고, 저 멀리에는 높이 뻗어 있는 주상복합 건물들이 있다. 비가 지붕에 내려앉으며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곧 그치겠지. 봄 비인데, 비는 후드득 후드득 소리를 내며 굵어졌다.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졌다. 한참을 가만히 바라봤다. 빗소리 한번, 바람 소리 한번. 공연의 열기를 받고 와도 신기하게 이 동네로 들어오면 스르륵 빠져나갔다. 땅을 촉촉히 적시던 비가 어느샌가 그치고 하늘이 은근히 환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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