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문학 단편선

Be 문학 단편선

토토실 2019. 2. 2. 11:53

어떻게 이런 말이 떠올랐을까. 

  작년 하반기에는 '더 나은 사람'을 목표로 비문학 책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하다보니, 딱 재미가 없음을 느꼈다. 펜을 내려놓고, 일기를 썼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그 질문을 생각해보니, 알게 되었다. 번듯한 취미가 없었다. 헬스장을 다니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미래를 위함이였다. 현재가 없었다. 물론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된다. 그런데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없다. 즐거움. 간과하면서 살다보니 내 감정을 살피지 않았다. 그렇게 메말라 가던 차에, 문학 독서와 글쓰기를 시도했다.

  슬픔부터 시작했다. 메말랐기에 눈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감정을 글로 써보고, 작업을 반복하면서 마음 한 켠이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빌 브라이슨의 글을 읽으면서 이 사람의 해학적인 글쓰기를 동경했다.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알았다. 문학도 쓰고 싶고, 비문학도 쓰고 싶어했다. 물론 문학은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단어와 단어, 문자와 문장 그리고 단락과 단락을 섬세하게 써내려가야 한다. 그 섬세함 속에서 무심함도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Be 문학이다. 레포트를 쓰라면, 자신 있다. 이성적으로 다가가면 얼마든지 써내려갈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아는 지를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문학은 그런 방식이 아니다. 정말로 예민해야 한다. 단어 한개에 감정을 읽고, 그 문단으로 호흡해야 한다. '예민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날카롭고, 곁에 있기 두기 어려울 수 있다. 민감하다. 감이 살아 있다. 느낌이 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훨씬 더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일단은 시작을 비문학이다. 더 많이 '아는 것'의 과정을 유지하고 그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배움의 과정에 꾸준함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문학을 올린다. 힘든 과정이다. 그렇지만 문학은 나에게 색깔을 더해줬다. 옷 살때도 색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무채색이 사실 쉽다. 색 조합도 만들어 내기 쉽고, 가잠 포멀한 무엇인가가 있다. 그래서 가장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아마 stay tune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나라는 사람의 색깔을 글로서, 언어의 온도로 표현해보고 싶다.


여기까지가 Be 문학 단편선 인트로 이다.